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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나라] [글소리샘] [멀티PPTx웹자료] [에세이] [배움길]

 

불   씨

 

                                                                 장 덕 진 지음

 

    196×12월 동수는 5년제 전문학교 건축과를 보기 좋게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예고된 낙방이기는 하지만, 섭섭하면서도 동수 자신은 한심스럽고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사실 어려운 가정에서 3형제 중 유일하게 차남인 동수만 중학교에 진학한데 대한 미안함과 한편으로는 진학할 수 없는

환경, 어림없는 실력인 줄 알면서도 혹시 합격하면 취직이 보장되어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응시했던 일이었습니다.

    졸업하던 그 해 겨울!

    그 겨울이 동수에겐 유난히도 지루하고 추운 겨울로 생각되었습니다.

    날씨가 풀리면서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며 새로운 삶을 이어갔지만, 도살장에 팔려 가는 소처럼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오직 배움이란 두 글자가 머릿속에 산만하게 뒤엉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한학을 하는 마을 어른께서 서당을 연다는 소식에 동수는 반가워하며 열심히 한문을 읽고 쓰며 배웠습니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학동 보다 진도도 빠르고 붓글씨도 잘 쓴다고 훈장 선생님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서당을 마치고 뒷동산 솔밭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살며시 눈을 뜬 동수는, 솔숲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보였습니다.

     배움은 이것으로 끝인가?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는데…….’

 갑자기 잔잔한 파란 하늘 호수는 파문을 내며 흔들리고, 동수의 마음을 슬프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나의 꿈은 어릴 적에 시주승들이 집에 들러 쉬어가면서,

     이 집 둘째 아들은 관록을 먹거나 선생님이 될 상이오.”

때로는

     이 집 둘째 아들은 학이 붓을 들고 있는 상이니, 관록을 먹거나 적어도 선생님이 될 것이오.”

    하곤 했던 기억들이 동수의 아름다운 꿈으로 머릿속에 박혀 버렸던 것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누워서 본 파란 하늘 호수는 솔숲과 어우러져 소용돌이치는 바닷물처럼 이리저리 빙글빙글 어지럽게

동수의 마음을 또 한 번 흔들어 놓았습니다.

     한문 공부도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게 아니지 공부를 더 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을 동수는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수는 곧장 아버지를 졸라 독학을 결심하고, 그 해 8월 군 복무를 마치고 대전에서 달구지 공장에 다니는 형님한테

달려갔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어느 가정집 부엌에 달아낸 한 평 남짓한 방에 자취하면서, 동수는 독학을 했고 형님은 공장에

다녔습니다. 둘이 옆으로 누워야 겨운 잘 수 있는 초라한 방에서 한 4개월은 지탱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동수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소화도 안 된다. 대변도 나오지 않는다. 약을 사 먹고 또 사 먹었지만,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공부는 뒷전이었습니다. 형님과 부모님께 미안했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도 무서워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수는 아픈 몸을 이끌고 그 해 12월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부모님의 실망 또한 대단하셨습니다. 좋다는 약을

다 사 먹어 봐도, 한약을 달여 먹어 봐도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보리죽마저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동수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체구나 작나 그 큰 체구가 야위어 가니 볼썽사나웠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저 집 둘째 아들 죽겠네.”

     몹쓸 병이 들었나 봐!”

     도대체 무슨 병이라우?”

     글쎄, 모르지.”

     196×2월 이 돈 저 돈을 끌어 모아 의술이 뛰어난 큰 병원이라고 소문난 전주 예수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위액을 검사하고 이것저것 진찰을 받은 결과 아무 병이 없단다. 가루약 3일 분만 받아 왔습니다.

     아파 죽도 못 먹는 판에 병이 없다니, 죽을병이라 위로했던 말인가?’

실망과 실망의 아픔은 동수의 눈앞을 가렸습니다.

     신경질 부리면서 땅을 치고 울며 절규를 해 보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형님과 떨어져

부모님 모시고 계시는 형수님도 신경통이니, 산후병이니 하면서 앓아눕고, 동수마저 앙탈부리고 누워 있으니 부모님의

걱정은 태산이었습니다. 아마 집안은 아수라장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동수 어머니는 모든 점쟁이를 동원하고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인다, 불공을 드린다, 뒤뜰 고목 신령님께 빈다, 매일 비는

게 일과처럼 정신이 없으시지만, 동수는 괴로워할 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신경질 부릴 기운도 없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 누구도 동수의 죽음을 막을 수 없는가 보다! 절망이었습니다.

    동수는 생각했습니다.

     나의 삶도 미래의 꿈도 포기한다. 나의 모든 것을 버린다.’

동수는 마음이 홀가분하였습니다.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찌는 삼복더위 가뭄 끝에 소낙비라도 지나가듯 집안은 잠시 잠잠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집안은 눈치

보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시한폭탄은 영원히 터지지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그 해 11월 그러니까 졸업한 지 2, 동수의 나이 열아홉, 동수는 아버지께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저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요.”

     ……

     아버지, 사는 날까지 하고 싶던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글쎄, 그러다 건강이 더 악화되고 공부도 못한다면…….”

     다 죽어 가는 아들의 마지막 부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시는 눈치였습니다.

     아버지, 하고 싶던 공부를 하면 날아갈 것 같아요.”

     동수의 아버지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시험을 쳐야 할 텐데 그런 몸으로 어떻게…….”

     동수는 겨우 정원을 초과한 경쟁이 약한 고등학교에 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고, 6×320살의 까까머리를 하고

입학을 하였습니다.모두들 동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것도 괴물을 본 듯한 눈빛으로 보고, 또 쳐다보며 힐끗힐끗

지나갔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동수는 거울을 보고서야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밀짚처럼 커다란 키에 깡마른 해골 같은 얼굴, 게다가 까까중처럼

밀어 깎은 머리, 걸맞지 않은 까만 교복은 동수가 보아도 보기 흉하였습니다.

     동수는 매일 새벽 6시가 되면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도시락 하나와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먼동이 겨우 밭둑길을 밝히면 이슬 열린 풀숲을 발로 젖히며 한 손에는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책을 들고 통학차를 타기

위해 5Km를 걸어 다녔습니다.

     1Km 정도의 풀숲 밭둑길을 지나면 신작로가 나온다. 어느 새 동수의 교복 바지가 아침 이슬로 흠뻑 젖곤 했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외우는 영어 단어가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읽은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았습니다. 동수는 기차역에 기다리면서, 기차 안에서 또 단어를 외우고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도 동수를 친구로 하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단어 외우며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동수의 친구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많게는 4, 보통 3살 위인 동수를 급우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점심도 역시 먹는 둥 마는 둥 한술 떠먹다 말고 집에 들고 가곤 하면, 부모님은 갈수록 마음이 조여 오는 듯 불안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수는 즐거웠습니다.

     시험을 쳤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3등이었습니다. 모든 급우들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만 보였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동수는 아직도 불씨가 가슴 속에 남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건강도 날로 좋아져서 식사도 점점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한 알의 약도 먹지 않았는데,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아졌습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나날의 세월은 동수의 건강을 완전히 되찾게 하였고, 성적도 우수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2학년 여름 방학을 한 그 이튿날, 모처럼 온 식구들이 함께 모여 앉아 즐거운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아버지, 풀을 누가 말끔히 깎아 놓아서 어제 학교 가는 길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누가 그랬을까요?”

     아버지는 씨익 웃으시면서,

     내가 그랬어.”

하셨다.

     아침 이슬 먹고 불씨가 살아난 것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흠뻑 받은 동수의 밥맛은 더욱 좋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오가며 틈틈이 읽었던 책 가운데,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라진다.’라는 깨달음으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우리나라 불교 교리를 집대성하고, 천태종을 창건한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의 교훈, 당시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결핵을 앓던 한 소녀는, 화가가 그려 달아 놓은 잎새가 떨어지지 않고 추운 겨울을 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나았다는

마지막 잎새의 정신적인 교훈이 생각난다. 소설 속에서만 가능하리라는 이야기가 동수에게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겨우 살아나고 있는 동수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기도 전에 다른 시샘의 불씨가 동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197×3학년 4월의 일이었습니다. 동수의 나이 22, 가방은 책상 위에 팽개쳐 놓고 읍내 깡패 두목으로

나돌아 다니기를 밥 먹듯이 하곤 했던 체구 좋은 종국이, 내 책상 앞에 꿇어앉아

     형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며 마룻바닥에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동수는 영문도 모르는 종국의 행동에 가슴이 오싹하였습니다.

     언젠가 종국이 양손에 유리병을 들고,

     이 새끼 덤벼

     , 이놈들아 죽여 버리고 말 테야, 어서 덤벼 새끼들아.”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성난 사자처럼 달려들어 한 쪽 유리병을 입으로 아삭아삭 씹고, 다른 쪽 유리병은 이마로 깨고 상대

얼굴에 유리 가루를 불어 피투성이를 만들더니, 그것도 모자라 칼날 같이 깨진 유리병으로 마구 난자하던 끔찍한 광경을

기차역 부근에서 한 번 본 일이 있었던 동수는, 무슨 유감이 있어 시비를 거는 수작이 아닌가 하고, 꽁꽁 얼어붙은 토끼처럼

동그란 눈으로 거동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형님, 놀라지 마십시오, 진실입니다.”

하는 부드러운 말에 동수는 다소 안심이 되었습니다.

     일어나 앉아서 말해 봐.”

     승낙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정말 쑥스럽기도 하고 난처했습니다. 하지만 종국의 눈빛을 보니 거짓이 아니고 진실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 좋아, 어서 일어나.”

     얼떨결에 동수는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종국은 일어나 말을 이어갔습니다.

     사실 저는 시골 부잣집 외동아들로 어쩌다 깡패의 늪에 빠져들어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처음 형님을 보았을 땐 깡마른

밀대처럼 볼 것 없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었는데, 형님은 내가 힘으로만 이길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형님이라면 저를 깡패의 늪에서 구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내게 그런 힘이……?”

     걱정 마십시오. 형님!”

     동수는 모든 급우들의 시선과 의문의 베일에 가리운 채, 하숙을 하면서 종국을 도와 가르치고 공부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종국의 졸개들이 매일 찾아와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까!

     종국이 형님, 형님 있어요?”

     종국을 대신하여 동수가 두목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종국이 있으면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혼자 있을 땐

떨린다. 하지만 용기를 갖고,

     종국이 못 나간다. 어서 가지 못해?”

호통을 쳐 쫓아 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수시로 찾아오는 졸개들을 일일이 쫓아버리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담임 선생님께서 모르고 계실 리가 없었습니다. 교내에서도 물론 화제가 되어 야단이었습니다. 때로

종국은 깡패의 본능이 살아나 애를 태운 적도 많았지만, 주위의 관심 속에 도와주는 덕으로 동수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잘

견디어 갔습니다.

     졸업하는 그 날이 왔습니다. 상도 받았습니다. 졸업의 기쁨보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쓸쓸함 그리고 무언가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이 동수의 머리를 흔들고 있을 때 종국이 불렀습니다.

     , 축하해!”

     어 그래, 종국이도 …….”

     종국은 향나무 가지에 손수 꽃을 꽂아 만든 화환을 동수의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급우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서로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해님은 그 모습을 찰깍찰깍 플래시에 곱게 담아, 파아란 하늘에 무지개꽃 수를 놓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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